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6)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기다렸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적부터 광야로 나가서 금욕과 운둔의 생활을 하면서 예언활동을 하였습니다. 특히 요한이라는 이름 앞에 세례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그의 외침을 받아들여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역시 세례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수많은 사람을 회개시키고 세례를 받게 하였음에도 자신이 베푸는 물세례를 넘어서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실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세례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기에도 과분할 정도로 나는 낮고 그분은 높으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다시 말해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한 자로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미리 알려주고 그를 구세주로 영접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당시 로마의 식민지하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이었던 헤롯의 부정한 삶을 질타하는 바람에, 헤롯의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옥중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여러 가지 일들을 듣고서 크게 번민을 합니다. 내가 세례까지 베푼 저분은 구약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맞는데, 지금 이 옥중에서 생각해보니 과연 저분이 우리가 기다렸던 구세주가 맞는가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의심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세례요한이 기대하고 바랐던 메시야가 맞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묻게 됩니다.
마 11:2-3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요한은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을 구할 구세주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가 당신이 맞냐고 말입니다. 행여 당신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구세주로 기다려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살고 있는 천하에 몹쓸 인간이 헤롯인데, 그 자를 왕이라고 섬기고 있는 이 불의한 현실을 고발하였는데, 나는 옥중에 있고, 부정을 일삼는 자는 왕으로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왜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당신은 이 부조리한 현실에 아무런 반응이 없냐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어떤 구세주, 어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까? 세상을 변혁시킬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온전히 실현시킬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목표하고 추구했던 하나님의 정의, 그것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역할이요, 동시에 믿는 자의 사명인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아가 맞냐는 무례한 질문을 받고서도 세례요한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어지는 마11:10에서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마11:10)고 하면서 예수님의 앞길을 준비한 세례요한의 사명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부분에서 세례요한의 기대가 어긋나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순서와 방법이었습니다. 헤롯을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바닥의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을 올바로 세움으로서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생각처럼 왕이 바뀐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까? 물론 일시적으로 부분적으로 세상을 변화될 수 있을 것이나, 본질적이고도 완전하고도 영원한 변화는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의 대상을 아래에서 보았습니다. 바닥의 삶을 살아가는 버려진 백성들의 삶을 먼저 구하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오실 그리스도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1:4-5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은 대답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너희들이 보고 들었으니 그것을 직접 세례요한에게 알리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당신께서 지금까지 행하셨고, 그리고 장차 행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맹인이 보게 되며, 못 걷는 사람이 걷게 되고, 나병환자가 낫게 되고, 못 듣는 자가 듣게 되고, 심지어는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창하게 사회정의를 외치고, 부정한 왕을 갈아치우고, 로마와 맞서서 식민지 나라를 구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절망과 좌절에 빠진 개인의 삶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주관적인 말씀이 아니라, 이미 구약의 예언자들이 언급하였던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사 35:5-6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종을 구세주로 보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로하여금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고통과 물질적 가난과 감옥에 매여 있는 백성들의 삶을 구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니, 그렇게 요한에게 전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합니까? 나의 눈을 뜨게 하고, 나의 귀를 열게 하고, 나의 질병을 낫게 하고, 나의 가난을 물리치는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과 영혼을 옭죄고 있는 세상의 모든 시험과 유혹의 감옥에서 구해내는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아기 예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당신이 기다리는 아기 예수는, 당신에게 어떤 분이냐고 묻거든, 그분은 무거운 세상 짐을 진 내 인생을 구하실 분이라고 우리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기다리고 내가 만나기를 원하는 예수는 보지 못하는 내 눈을 뜨게 하시는 분입니다. 듣지 못하는 내 귀를 열게 하시는 분입니다. 걷지 못하는 나를 걷게 하시는 분입니다. 상한 마음을 간직한 나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한 나에게 복음을 들려주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내실 그리스도는 아래서부터의 변화와 구원을 이루고자 했기에, 이제 그의 사역의 본질은 겸손하였고 작고 미천한 것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 42:1-4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택하신 그리스도는 광장에 나가서 큰 소리로 외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목소리를 높여서 자기를 주장하거나 세상을 선동을 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택한 그 종의 관심은 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거리에 나가서 목소리를 높이는 자에게 상한 갈대의 인생이 보이겠습니까? 꺼져가는 등불의 삶이 보이겠습니까? 그 큰 소리에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등불의 삶은 다 가려지고 말 것입니다. 이미 귀족이 되어버린 노동조합과 기득권 세력이 되어버린 ngo는 더 이상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의 삶에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미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십니다. 보일 듯 말 듯, 존재감 없는, 소외된 삶에게 다가 가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왕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낮고 비천한 민초들의 삶으로 내겨가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분이시오, 꺼져가는 등불의 인생을 다시 밝히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상한 갈대처럼 연약함에 처해 있다면, 내가 꺼져가는 등불처럼 낙망해 있다면, 주께서 내 삶 속에 더욱더 가까이 와 계심을 믿고, 힘과 용기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으로 눈을 돌려 봅시다. 예수를 만나서 내가 눈을 뜨게 되고, 귀가 열리게 될 때에, 세례요한이 원했던바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열린 눈과 귀로 악한 것을 버리고 선한 것을 듣고 보고자 할 때, 우리는 의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것이 누룩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변화가 모아져서 그것이 촛불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큰 외침이 되고 더 큰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내 눈을 밝히고 내 귀를 열어주시고 내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그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빛과 소금이 되어 여러분들이 성탄의 주역이 되고, 성탄의 기쁨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