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임금이 종들을 불러 모아서 셈을 하는데, 만 달란트를 빚진 자가 임금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종에게 명하기를 그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종은 엎드려 절하면서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소서, 내가 다 갚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종이 빚진 만 달란트는 16만4천년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액수였습니다.(한달란트=6천데나리온=하루 품삯, 만달란트=16만4천383년) 종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임금은 이 사실을 알고서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을 꾸어간 친구를 옥에 가두고 맙니다. 이를 본 동료들이 임금에게 알리니 임금은 괘심하게 여겨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 종을 옥에 가두고 맙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고 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이 비유는 용서에 관한 베드로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는데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이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는 비유 속에 숨겨져 있는 인간의 실존과 구원에 관한 말씀을 먼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실존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만 달란트 빚진 자로 서 있다는 것입니다. 임금으로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용서 외에는 인간을 구원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심청이는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임당수에 몸을 던졌습니다. 공양미 3백석을 마련할 길이 없어 풍어를 기원하는 어부들에게 몸을 팔아 고깃배 위에서 몸을 던집니다. 물론 심청이의 효심에 감동한 용왕의 자비로 심청이는 살게 되고 아버지는 눈을 뜨게 되는 헤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심청이가 감당해야 할 공양미 3백석은 자력구원을 넘어선 숫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전설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두고서 효심 깊은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만 달란트 빚진 인간을 불쌍히 여겨 그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했건만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은 백 데나리온, 다시말해 석 달을 참아달라는 빚진 친구의 간청을 거부하고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백 데나리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섭섭하게 여기는 일들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탕감받은 만 달란트에 비하면, 백 데나리온에 불과합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용서의 근거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순절 다섯째주일입니다. 사순절이 소중한 것은 한없이 넓고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받을 은혜만 계수하고, 베풀 은혜에 대해서는 인색하였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는 절기가 사순절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사 55:6-8)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는 언제입니까? 가까이 계실 때는 어디입니까?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고, 그의 길은 인간의 길과 다르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과 연결해 본다면 인간의 생각은 백 데나리온에 연연하는 좁고 편협한 생각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만 달란트를 탕감하시는 바다같이 넓고 깊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만 달란트를 탕감받고도 백 데나리온에 실족했던 우리의 삶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삶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셨으니, 오늘 여기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의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