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 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Giving Tree)>는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천 만권 이상이 팔렸습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 동화는 소년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과나무를 그리고 있습니다. 나무는 소년이 돈이 필요할 때 사과 열매를 따서 팔게 하였고, 집이 필요할 때 가지를 내어주고, 마지막에 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하니 나무 둥지를 잘라 배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 돌아온 소년에게 밑둥치를 내어주면서 이곳에서 편히 쉬라고 하였습니다. 나무는 우리의 부모요 소년은 자식을 말합니다.

하나님 역시 모든 것을 내어 놓은 부모와 같다고 합니다.(호 11:1-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에서 불러내어 걸음마를 가르쳤고, 품에 안아서 키웠고, 먹을 것을 두어 먹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베푸신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렸습니다.(호 11:7) 저들을 지켜 줄 것으로 알고 강대국에 붙었지만, 결국 강대국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 11:8)라고 하면서 비둘기가 자기의 집으로 돌아오듯 내 백성을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호 11:11)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은 후, 교과서는 “독후감 쓰기를 위한 생각거리”로 “무조건적인 사랑은 좋은 것일까요?” 그리고 “소년은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했을까요?”를 제시합니다. 적당한 회초리와 훈계가 있어야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는 물음을 던진 것입니다. 저는 두 가지 생각거리를 놓고서 믿음의 세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αγάπη)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 거룩한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십자가 사랑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십자가 사랑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아낌없는 사랑이요 무조건적인 사랑임을 말합니다.(요일 4:9-10) 그러나 조건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른 육의 현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아낌없이 베푸신 사랑이 상실된 믿음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에 익숙하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는 값싼 은혜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순교자라 불리는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값싼 은혜를 지적하는데, 그것은 받을 것만을 계수하는 이기적인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독후감의 두 가지 물음, “무조건적인 사랑은 좋은 것일까요?” 그리고 “소년은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했을까요?”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주는 생각거리요 물음인 것입니다. 조건 없이 아낌없이 받기만 했던 우리의 믿음은 과연 성숙한 믿음으로 자랐는가, 여전히 미숙한 초등학문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았는가를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조건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지난 한 해를 살아왔습니다. 아낌없이 베푸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산을 넘고 물을 건넜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되새겨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의 이면에는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희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때에, 우리는 지난 한 해를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있음으로써, 온전히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다가오는 새해는 지난해의 허물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바르고 선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걸음마를 가르쳐서 걷지 못하는 나를 걷게 하신 하나님이시오, 나약한 나를 당신의 품에 안아서 강한 자로 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줄로 이끄셔서 일용할 양식을 먹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마침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 보혈로 나를 살리신 생명과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가 값싼 은혜가 되지 않도록 성숙한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성숙한 믿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