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차 십자가 죽음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의 얼굴과 옷이 변하여 광채가 났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눅 9:31)을 말씀하셨습니다. 산에 오르기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십자가 죽음을 다시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죽음을 뜻하는 ‘별세’를 ‘엑소도스’로 말합니다. 엑소도스는 탈출 또는 해방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 “과거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한 탈출”을 말합니다.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구속받은 자유인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출애굽, 곧 엑소더스인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열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단순히 육의 삶을 마감하는 세속적인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구약의 두 기둥인 모세와 엘리야와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에, 예수님을 따라온 세 명의 제자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졸음에서 깨어나 보니 예수님은 빛나는 광채로 변모하였고 옆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상황이 사라질까 아쉬워 초막을 셋 지어 이곳에서 있는 것이 좋겠다고 예수님께 제안합니다.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집을 지어 여기서 머무르자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세와 엘리야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하늘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 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영광은 산 위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자들끼리 모여서 그들만이 누리는 영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화산의 영광을 구름 뒤로 거두어 가시고 내가 택한 자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하늘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주현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현절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영광은 눈처럼 희고 빛나는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은 산 아래, 땅에서 성취될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보내신 예수를 통하여 보여줄 주의 은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갇힌 자를 놓아주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고, 슬픔을 아름다운 화관으로 대신하고, 근심을 찬송으로 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모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눅 4:16-19) 그런데 산 아래의 세상은 이사야의 말씀처럼 마음이 상한 자, 포로 되고 갇힌 자, 슬픔과 근심에 매인 자들이 하늘의 은혜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변화산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귀신들린 외아들을 가진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귀신에 붙들려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포로되고 갇힌 자의 삶의 상징입니다. 그 아버지는 마음이 상하고, 슬픔과 근심에 매인 자의 삶의 상징입니다. 이것이 산 아래 세상의 모습이었습니다. 병든 아들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이 아이를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니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아이를 낫게 하셨습니다.(눅 9:41-43)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가슴에 품고 산 아래로 내려와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귀신과 싸우고, 불의한 마귀를 물리침으로써, 육신의 질병이 낫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입니다. 나를 억누르고 있는 세상 짐으로부터 벗어나 기쁨의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의 은혜의 해를 맛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베드로가 원했던 천국의 초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변화산의 영광을 가슴에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 빛나는 영광으로 산 아래 세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를 붙들고 있는 모든 매인 것으로부터 해방 받고 주의 은혜의 해를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